서울초년생 썸네일형 리스트형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.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. 그 날은 정말 그랬다. 큰 볕이 든 것이다. 딱딱한 찬밥을 오래 씹듯 팍팍한 서울살이와 회사생활이 몇 달 간 지속되었다. 회사에서 크게 인정받는 것도 아니었고 사장의 얼굴은 처음 만났던 날과 달리 욕심많은 마귀할멈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의 사수는 좀 주책맞는 구석이 있었다. 상사들과 동료들은 잘 대해주지도 않았으며, 사장에게 복장 문제로 한 번 찍힌 적이 있었다. 이래저래 재미없는 회사생활을 몇 달 째 이어가고 있었다. 한 마디로 기죽어 산 것 같다. 내가 일한 회사에서 가장 큰 고객은 우리나라 중공업 회사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였는데, 그들이 의뢰한 직원 교육을 사무실에서 몇 년간 담당하고 있었다. 어느 날 늦은 오후 , 그 회사의 과장이 겸사겸사 우리 사무실을.. 더보기 사투리가 촌스러워??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면 자기도 모르게 사투리를 의식하게 된다.그 아름다운? 사투리를 왜 의식하는지 모르겠지만, 사투리를 쓰게 되면 꼭 한 번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.분위기를 즐겁게 하는 농담거리로 자주 등장하지... 익살스러운 건 사실이니까 서울에서 위기의 끝에 입사하게 된 회사는 업무상 각 기업의 인사담당자나 임직원 교육 관련자들과 연락할 일이 많았다.입사 후, 맨 처음 느낀 것은 사무실이 아주 조용하다는 것이었다. 전화도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 보니, 조용함이 나 같은 신입에겐 더 큰 불편함을 주었다. 며칠간 할 일도 없는데 사무실까지 조용하니 시간이 정말 무거운 발걸음으로 달려간다는 생각이 들었다. 얼마 후, 내가 담당할 고객사들이 생겼고 어떤 일로 전화를 하게 되었다.나는 최선을 다해.. 더보기 서울에서 눈뜨고 코 베이다 ㅜㅜ 내가 맨 처음 서울에 오게 된 계기는 직장을 구했기 때문이다.이 사실 이 얘기를 나누는 게 내가 너무 찌질해 보이는 것 같고 창피한 일처럼 느껴져 남들에겐 잘 말하지 못한 일이다.하지만 이 일을 기록해 두는 이유는 벼랑 끝에 서 있게 될 때, 인생에서 죄 없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, 미숙한 선택으로 곤란을 겪을 때 절망적인 소리에 속지 않기 위해서이다. 서울에 오기 전, 3년 동안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였고 한국에 들어온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.취업을 위해, 6개월 동안 토익도 준비하고 운전면허증도 따도 나름 알차게 준비한 것 같다.유명 일간신문지에 '원어민처럼 영어를 익히는 학습법'이란 광고를 몇 번 보았었고, 그곳에서 구인광고를 게재해 둔 것을 보게 되었다. 외국인들과 생활을 했기에 영어를 스쳐.. 더보기 내 인생 첫 반지하살이 상경후 집을 구하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다. 여자 혼자 살아야한다면 안전문제로 집 구하는 것은 특히 신경을 써야할 문제이다.서울에 올라와선 처음 첫 일년은 친척분의 크나큰 은혜로 방 한칸을 그냥 얻어살았다. 하지만 일년후 그 분의 사정으로 집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.부산에 계신 부모님께서 나 결혼할때 주려고 모아둔 돈이라 주시면서 전세를 알아보라고 하셨다.역시 부모님이 최고다!내 손에 들어온 돈은 그 당시 2천5백만원. 사실 큰 돈이었다. 돌아보니 이것은 결국 종자돈이 되어주었다. 자~~ 한 번 전세를 알아볼까? 사실 어느 동네로 가야할 지 아무 생각이 없었고 직장이 강남역 부근이라 그 근처는 당연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. 올림픽 공원이 너무 좋아서 그 곳과 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. 서울 시내에서.. 더보기 말은 제주도로, 사람은 서울로? 나는 십 삼사년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. 취업이 그 목적이었다. 앞으로 겪을 일들을 알았다면 절대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. 왜??? 너~~~~~~~~무 힘들었으니까. ㅠㅠ 그래서 많은 지방출신들이 결국엔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학업으로 취업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서울로 서울로 상경한다. 앞으로도 또 많은 예비 상경자들이 있을 것이다. 그들이 겪을 문화충격과 씁쓸함을 미리 말해주어도 좋겠지? 에휴~~ 그렇지만 스스로 자랑스러워질 날도 올 것이다. ^^ 더보기 이전 1 다음