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.
그 날은 정말 그랬다. 큰 볕이 든 것이다.
딱딱한 찬밥을 오래 씹듯 팍팍한 서울살이와 회사생활이 몇 달 간 지속되었다. 회사에서 크게 인정받는 것도 아니었고 사장의 얼굴은 처음 만났던 날과 달리 욕심많은 마귀할멈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의 사수는 좀 주책맞는 구석이 있었다. 상사들과 동료들은 잘 대해주지도 않았으며, 사장에게 복장 문제로 한 번 찍힌 적이 있었다. 이래저래 재미없는 회사생활을 몇 달 째 이어가고 있었다. 한 마디로 기죽어 산 것 같다.
내가 일한 회사에서 가장 큰 고객은 우리나라 중공업 회사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였는데, 그들이 의뢰한 직원 교육을 사무실에서 몇 년간 담당하고 있었다. 어느 날 늦은 오후 , 그 회사의 과장이 겸사겸사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 것이다. 사무실 분위기는 한껏 들뜨게 되었다. 그 회사 교육만 담당하는 직원이 3명 있는데 다들 대고객사의 과장에게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나누었다. 그의 등장으로 모두의 관심이 그에게 쏠렸다. 나도 그 회사의 과장이 궁금해서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.
'어??? 아는 얼굴... 누구더라? OO 오빠?'
내가 작은 소리로 "OO 오빠!" 라고 이름을 되뇌이자, 내 옆에 있던 사수가 " 저 과장 알아요?"라고 물어보았다.
"네, 같은 학교 다녔어요."
그 과장이 맡긴 직원 교육으로 우리 회사가 먹고 사는데, 내가 그 사람을 알고 있고 '오빠'라고 내가 불렀으니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. 이 일은 사장한테까지 전달되었고 그 날 저녁, OO오빠를 식사대접하는 자리에 별 볼일 없는 나를 초대해 준 것이었다. 졸업후 한 번도 만난 적 없었고 나의 절친과 아주 가깝게 지낸 던 오빠였다. 식사를 하며 잠간 옛날 얘기도 나누고 무난히 식사는 끝이 났다. 그 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회사에서 주목을 받게 되고, 내가 이 곳과 인연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동료직원들은 나누었다.
대학시절, OO 오빠는 사람좋아보이고 성실하게 도서관을 왔다갔다 했었는데, 기억나는 것은 그의 목소리애 사실 문제가 좀 있었다. 영문과였지만 어학을 하기엔 사실 불리했을 것이다.
성공한 그의 삶은 그에게 예전과 다른 새로운 목소리를 주었다. 성대수술을 했을까? 목소리가 변해있었다. 그리고, 가난한 예비역같은 모습은 아니었다.
아무튼 나는 그의 등장으로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속담의 진실을 체험하였다. 그리고, 감사했다. 우여곡절많은 서울적응시기에 단비같은 은혜가 아니었던가! 지금도 힘든 서울살이를 하는 많은 청년들, 직장인들이 있는데, 기죽지말고 만약 지금의 그 자리가 나의 자리라면, 쥐 구멍에도 볕 들 날은 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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